연꽃의 계절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뜨거운 여름, 진한 향기를 풍기는 반가운 꽃입니다.
정말 소박하면서도 꾸밈없는 아름다운 꽃입니다.
나무에 피는 연꽃을 목련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연꽃을 ‘워터 매그놀리아’라고 할 수도 있는 건 아닐까요?
사실 영어로는 ‘로터스’(Lotus)라고 해서 연과 수련을 함께 통칭합니다만, 연과 수련은 생물학적 분류에 의하면 같은 수련과이지만 속으로는 많이 갈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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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릴 때 여름방학이면 연꽃 방죽에 놀러가곤 했습니다. ‘덩무니 방죽’ 이라고 불렀습니다.

시오리나 멀리 있는데도 슬슬 향기가 느껴지면 개울을 건너고 뚝방을 넘어 뙤약볕에 그 먼 길을 걸어갔습니다.
멋진 신세계였습니다. 그리고는 주저앉아 한참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며 분홍 꽃으로 뒤덮인 드넓은 방죽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꽃향은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코를 벌름거리며 누워서 흰 구름 떠가는 하늘을 올려다 보곤 했습니다.
당시엔 몰랐던 말이지만 아마도 ‘행복함’이었을 겁니다.

흐린 세상을 욕하지 마라 / 진흙탕에 온 가슴을 / 적시면서
대낮에도 밝아 있는 / 저 등불 하나  (이외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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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척없이 가만히 있다 보면 가물치나 자라가 물가로 나와 햇살을 즐기거나 물속의 잉어가 갑자기 뒤척이며 정적을 깨기도 합니다.

잠자리는 낮은 하늘을 돌며 짝짓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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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잘 여문 연밥 두어 송이를 땁니다. 그리고는 커다란 연잎을 자릅니다.
가면서 까먹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금방 도착합니다.

정말 고소한 간식입니다. 연잎은 양산 대용입니다.
머리에 엎어쓰면 정수리로부터 목을 덮어주어 그늘을 만들어줍니다.
혹여 소나기라도 내리면 우산이 됩니다.

그렇게 몇 번 갔다오면 여름방학이 끝나갔습니다.
그때부터 밀린 일기쓰기와 방학숙제 몰아치기에 돌입하곤 했습니다.

이런 추억의 연꽃이 설악에도 피었습니다.
꽃을 보자마자 50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연꽃은 타임머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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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은 꽃의 기원을 연이나 목련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꽃의 원시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연은 1줄기 1잎 또는 1줄기 1꽃의 매우 간단한 구조의 식물입니다.

다른 꽃들은 이미 진화나 발전을 거듭하며 꽃잎 수도 적고 세련되어지고 수정도 편히 할 수 있으며 씨도 얼른 여물어 후세를 준비하는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연이나 수련, 또는 목련은 꽃잎이 너무나 많고 두껍습니다.

씨방도 꽃 아래 밀실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도드라져 있기에 여물기까지 곤충이나 다른 동물로부터 해를 당할 위험성도 있습니다.
꽃은 1억3천만년 전부터 지구상에 나타나 지속적으로 발전해왔습니다.

힌두교나 불교에서 연꽃은 신성함의 상징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속세의 더러움 속에서 피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청정함을 유지한다고 하여 극락 세계를 상징합니다.
석가모니가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나 일곱 걸음을 한걸음씩 걸을 때마다 연꽃이 피어났다고 합니다.
부처가 앉아 계시는 자리를 연화대좌라 하는데 연꽃으로 만든 큰 자리란 뜻이다.
심청전에도 심청이 용궁에서 올라올 때 연꽃을 통해 세상으로 오듯 우리의 조상들은 연꽃에 환생의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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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맛있는 디저트처럼 생긴 원뿔형안에 점찍듯이 박혀있는 것이 암술이고 둘러싼 하얀 꽃술이 수술)

 
處染常淨(처염상정)이란,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지만 결코 더러운 흙탕물이 묻지 않는 연꽃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참부모님을 의미합니다. 타락한 혈통 속에서 타락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오신 독생자, 독생녀. 바로 그 모습입니다.

                                                         "                                                 
“이 더러운 속세에서 연꽃과 같이 아름답게 필 수 있는 하늘의 주목의 대상이 되겠다고….
그게 도의 표준이 된 게 그래서 생겨난 것입니다. (1991.2.1.)”

“꽃이 아름다우니까 그건 세상에 부활된 뭐라고 그럴까,
해탈한 하나의 꽃으로 보기 때문에 귀하게 여긴다는 거예요.”(2004.9.21.)
                                                                                                           

연못이란 말도 연에서 기인합니다.
당나라에서 처음 시작되었는데 왕궁이나 저택에는 연꽃을 심었다고 합니다.
송의 유학자 주돈이가 쓴 <애련설>에서 연꽃을 ‘군자’로 비유하여 크게 유행했다고 합니다.

"속은 비었지만 밖은 곧으며, 넝쿨지지 않고 가지 치지 않으며, 향은 멀수록 더욱 맑고, 당당하고 고결하게 서 있으며
멀리서 볼 수는 있어도 함부로 가지고 놀 수는 없음을 좋아한다.

나는 이르건데 국화는 꽃의 은자이고, 목단은 꽃의 부귀한 자이며,연꽃은 꽃의 군자라 하겠다." <愛蓮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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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도 야목교회에서 협회 제2차 전도사 수련회가 열렸습니다.
이때 참아버님은 물론 남녀불문하고 모두 야목의 늪에 들어가는 훈련을 시키셨는데,여기에 잔뜩 피어있던 것이 가시연이었습니다.
가시에 찔려 몸에 상처가 많이 나서 밤에 잠을 잘 때면 쓰라리고 아파서 고생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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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야목교회 전도사 수련회-가시연꽃으로 뒤덮였던 바다연못에서 해양섭리의 원초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자료사진)
 
천정궁 천정루에도 연이 피어있습니다. 수련입니다. 수련은 물에서 자란다고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밤이면 잠을 잔다고 하여 붙인 이름입니다.
그래서 睡蓮이라고 씁니다. 금붕어와의 조합이 일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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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루의 수련)
 
연꽃은 보통 때와 달리 개화기 동안에는 주변 기온이 10℃ 이하로 떨어져도 32℃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연꽃은 개화 후 4일째엔 꽃잎을 떨어뜨립니다.

줄기에는 뿌리에서 잎까지 관모양의 통기조직이 발달하여 물속에 있어도 산소를 공급받아 뿌리가 호흡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연근은 늪 속에서 왕성하게 번식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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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연꽃잎이 항상 아름답고 깨끗한 것을 현대 과학에서는 ‘연꽃잎 효과’라고 부릅니다.
매끈하게만 보이는 연꽃잎의 표면을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돌기가 산봉우리처럼 있고, 여기에 더 작은 나노미터 크기의 돌기가 나무처럼 배열돼 있습니다.

이런 구조 덕분에 물을 밀어내 물방울이 퍼지지 않도록 하여 먼지를 쓸어내는 자기 세정 효과를 지닐 수 있습니다.
이를 이용하여 비에 젖지 않는 옷이나 때가 끼지 않는 페인트를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2009년 경남 함안에서 유적발굴을 하다가 연꽃씨앗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석화된 점토 안에서 잠을 자고 있던 10개의 씨앗이 발굴되었는데 700년 전의 씨앗으로 측정되었습니다. 이를 발아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현대의 연꽃보다 더 날렵하고 가녀린, 옛 불교의 탱화에서 보이는 바로 그 모양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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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년 만에 개화에 성공한 ‘아라홍련’- 자료사진)
 

<아라가야>라는 당시 그 지역의 이름을 따서 ‘아라홍련’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거슬러보면 일본에서는 동경대학 지하 운동장에서 발견한 2천년 전의 씨앗을 싹틔우는데 성공한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연의 생명력이란 참으로 놀랍습니다. 천년을 넘어서도 싹을 틔우는 연꽃 씨앗은 신비롭기 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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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은 정수식물입니다.
더럽고 썩은 냄새나는 시궁창에서 자신의 향기로 그 냄새를 지우고, 오염된 물을 맑게하는 식물입니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승리하는 전화위복의 식물입니다.

 

그래서 참부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는지도 모릅니다.

                                                      "                                                  
“천주 성터 가운데 영원한 연꽃의 동산을 만들자.” (2011.3.9.)